래퍼 스윙스님과의 작업 후기를 공유합니다. 저는 2019년 12월부터 약 6개월간, 잠깐이지만 스윙스님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29살의 제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한 글이며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아래 글은 예전에 적어놓았던 글이여서 반말(?)이 사용된 점을 양해바랍니다.
함께 하게된 계기
나는 2019년 12월부터 약 6개월간, 레코딩 엔지니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레코딩 엔지니어는 컴퓨터와 녹음 장비를 연결하고 가수 혹은 악기의 녹음을 받는다. 나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된 것처럼 먹고 살 일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강사를 그만두고 음악 관련 일이 아닌 다른 일도 해봤지만 나와 맞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았다. 전공과 관련된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래퍼 스윙스님이 레코딩 엔지니어를 구한다는 글을 보게 됐다. 그 글은 24시간 내에 사라지는 글(스토리) 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못 봤을 텐데 운이 좋게 보게 된 것이다.
그 글을 처음 본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나는 당장 스윙스님에게 메시지(DM)를 보냈다. 그리고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 기회를 어떻게든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냈겠는가? 잘못하면 그가 내 메시지를 아예 읽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흥 면접
나는 다음 날 아침 가장 빠른 시간의 KTX 기차표를 예매했다. 직접 방문해서 이력서를 가져다주고 올 작정이었다. 나는 평소 그의 팬이었기 때문에 근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서울 홍대 근처에서 운영하는 회사, 헬스장, 카페가 모두 밀집돼있었다. 특히 당시에는 카페를 개업한지 얼마 안 됐었기 때문에 반드시 한 번은 카페에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카페에서 기다렸다가 이력서를 주고 올 생각을 한 것이다.
대망의 다음 날 아침, 나는 홍대 카페에 도착했다. 근처 PC방에서 이력서를 출력했고 꽃집에서 작은 화분도 하나 샀다. 개업 축하 선물을 주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이력서만 주고 오는 것보다는 화분까지 주고 오면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접 이력서를 주지 못하게 된다면 카페 직원에게라도 주고 올 생각으로 카페에서 기다렸다. 기다린 지 30분 정도 됐을 때였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카페에 나타났다. 나는 그의 업무에 방해되지 않게 업무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이력서를 주었다. 그는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나도 대답을 했다. 즉석에서 면접까지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력서를 주고 다시 기차를 타고 본가(지방)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함께 일해보자는 전화를 받게 됐다.
일을 했던 방식
나는 뛸 듯이 기뻤고 그동안의 설움이 모두 씻겨나가는듯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평소 좋아하던 아티스트이기도 했고 한 분야에서 최정상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지방과 서울을 오가면서 레코딩 엔지니어 일을 시작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수도권의 한 회사에 정규직 사운드 디자이너로 취직도 했다. 그래서 평일 주간에는 사운드 디자이너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레코딩 엔지니어 알바를 하게 됐다. 알바는 정기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스윙스님의 일정에 맞춰서 비정기적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10번 가까이 그와 녹음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정규 앨범을 완성시켰다.
시급은 서로 상의하여 1만 5천 원으로 정했다. 녹음은 1회에 2~3시간 정도 했다. 가끔 그가 일정 때문에 약속했던 시간에 못 올 경우 시급과 기프티콘을 주었다. 늦은 밤에 녹음이 끝나는 경우에는 차비를 챙겨준 적도 있었다.
열정과 태도
알바를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점은 나의 성실한 태도와 열정을 높이 평가받은 점이었다. 그는 녹음을 하던 와중에 즉흥적으로 나에 대한 칭찬을 랩으로 녹음하였고 그 말은 실제로 음원으로 발매되었다. 나는 놀라우면서도 기뻤다. 이 랩은 ‘카메라 프리스타일’이라는 곡 후반부(03:25)에 등장한다.
또 그는 ‘카메라 프리스타일’을 유튜브에 선공개했는데 (스스로 유출(?)하는 스윙스 (Swings) – 카메라 프리스타일 (Prod. By Swings) [Upgrade 4]) 그 게시물의 내용에 내 이름을 함께 작성해 주었음은 물론
‘김봉현의 랩게임토크 REP TV’라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내 이름과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해 주었다. (“논란이 없다면 그건 힙합이 아니에요”, 스윙스와의 대담 2부 | RAP GAME TALK 23, 01:54~)
그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열정과 프로페셔널한 태도에 대해 칭찬해 주었다. 정규직인지 아르바이트인지도 모르고 지방에서 기차 타고 와서 이력서를 직접 제출한 점, 비록 아르바이트였지만 지방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시간 약속에 늦지 않았다는 점,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녹음 작업에 임했다는 점, 자신만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상호 이득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 그를 감동시킨 것이다.
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얻게 됐다. 자존감을 회복했음은 물론 자신감도 얻게 된 계기였다. 이 경험은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좋은 경험이었다.
경험, 깨달음, 돈
아쉽게도 나는 스윙스님과 더 함께 하지는 못했다. 그와 더 일을 하게 됐다면 어쩌면 더 좋은 기회를 얻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의 본업인 정규직 사운드 디자이너 일에 더욱 집중이 필요한 시기였다. 게다가 레코딩 엔지니어라는 일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고정적 수입을 벌 수도 없고 무엇보다 언제 일정이 잡힐지 모르기 때문에 나의 일정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내가 주도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이를 계기로 내가 원하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됐다. 이는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상으로 래퍼 스윙스님과의 작업 후기를 마칩니다.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저의 혼란스러움이 묻어나있기도 합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